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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산 ( 보타산, 보광산)

피닉스 2013. 6. 11. 21:21

 6월 6일 한려해상 공원에 있는 금산이란 산을 등산하게 되어 산악회를 따라 나셨는데 금산을 구경할려 두가지 방법이 있단다

하나는 제2 주차장에서 버스나 택시를 타고 보리암에 올라가 아름다운 돌삐들을 구경하는 방법이 있구 또하나는 탐방지원

쎈테에서 부터 쌍홍문을 지나 아름다운 돌삐들을 구경하는 방법이 있다는데 난 이왕이면 등산하면서 구경하기로 하였담니다.

 

 이와같이 원점 회귀 산행을 하기로 하고

 

조금 올라가보니 즉 금산 주차장에서 부터 시작해서조금만 감 쌍홍문에 도착하는데요.

복곡 제2주차장에서 출발함 샤틀버스나 택시를 타고 보리암까지 올라갈수 있다는데~~~ 

 산이람 높으나 낮으나 땀나고 힘들기 마련이죠.

  

사선대

동서남북에 흩어져있는데 네신선이 이암봉에서 모여 놀았다하여 사선대라 부른다.

사선대를 지나 한참을 올라가다보니

 

 쌍홍문

금산의 관문이며 천양문이라 불러 왔으나 신라 중기 원효대사가 두굴이 쌍무지개 같다고 하여 쌍홍문이라 부르게 되었다.

 

 

 장군암

이바위는 장군이 검을 짚고 봉을 향하여 서있는 형상을 하고있어 장군암이라 하였으며 금산의 첫 관문인 쌍홍문을 지키는

장군이라 하여 일명 수문장이라고 한다. 특히 이바위를 휘감고 있는 송악으로 인해 장군암이 더욱 늠름해보인다.

 

 

 

 

 

 

 쌍홍문을 빠져나와 다시 좌선대 상사바위를 구경할려고 올라가는데~~

 

 쌍홍문 뒤에서 구경해본 쌍홍문 위의 굴모양~~~

금산 입구에서 겨우 1.7km  이지만  아주 빡세게 올라왔군요.  

 뒤에서 오르다보니 ~~ 장군암에 올라가 이런 경치도 보는 군요.

 제석봉

이바위에 제석천이 내려와 놀다갔다 하여 제석봉이라 부른다.

 볼교에서 제석천은 부처를 좌우에 모시는 불법을 지키는 신을 말한다.

 우측에 보이는 암자에서 물을 얻어 먹어보니 참으로 물맛이 좋드군요

 

 

 

 

 흔들바위 거북이 모양을 닮아 본래는 귀암이라 하였으나

큰바위가 한사람의 힘으로 흔들린다고 해서 흔들암이라고도 한다.

 

 

 

 

 

 상사암

이바위는 조선조 19대 숙종대왕시절에 전라남도 돌산지역사람이 남해에 이주하여 살았는데 이웃에 사는 아름다운

과부에게 반하여 상사병에 걸려 사경을 헤매게 되었다. 남자가 죽을 지경에 이르자 아름다운 과부가 이바위에서

남자의 상사를 풀었다하여 이바위를 상사암이라 부르게 되었다.

 

 참으로 아름다운 돌삐들이군요. 멀리 보이는 남해의 아름다운 섬들이 있구요.

 

 

 돌삐사이로 보리암도 보이구요.

 단군 성전

이곳은 천년의 세월을 넘어 우리겨례의 시조 인 단군 할아버지를 모시고 전하여 내려오는 성역으로서 한배검님의

가르침으로 일문 대종사이신 김연심선생께서 많은 공력을 거처 1995년에 재건하였다. 성전에는 환인 하느님 환웅천와

국조 단군왕검의 천상과 천진 삼신미륵을 봉안하고 우리민족의 상징으로 기리고있다

이곳에서 사진을 찍으려하니 촬영금지가 붙어 있군요.  

 

 

 정상근처에 오니 이리 아름다운 돌삐가 있읍니다.

 기억력 좋고 예리한 감각에 정확한 판단력을 가지신 분~~ 넘넘 잘생기시고 멋쟁이신분 ~~~

산에옴 늙은놈 다치지나 않나 걱정하시면서 돌봐주시는 분 경찰의 꽃인 별도 달으시구 ~~

늙으말년에 새로운 분을 만나 언제나 폐만 끼치는것 같습니다. 건강하시고 복많이 받으세요.

 남해금산 봉수대

봉수는 높은 산에 올라가서 밤에는 횃불로 낮에는연기로 급한 소식을 전하던 전통시대의 통신제도이다. 이제도는 처음에

 외적의 침입을 알리는 군사적 목적에서 실시 되었다. 우리나라에서는 기록상 고려 중기(12~3세기)에 이제도가 나타나지만

실제로는 삼국시대 이전부터 실시된 것으로 추정된다 그러나 우리나라에서 봉수제가 체계적으로 정비된때는 왜구의 침입이

극심했던 고려 말기와 조선초기 이후였다. 봉수대는  일정한 거리를 둔 산꼭대기 중에서 시야가 확트인 곳에 설치하였다,

그리하여 평시에는 불꽃이나 연기를 내어  적이 바다에 나타나면 두 번 적이 해안에 근접해 오면 세 번 바다에서 접전이

이루어지면 네 번 육지에 상룩했을 경우에는 다섯번의 불꽃이나 연기를 피워 올렸다. 이곳 금산 봉수대는 고려 의종

(1147~1170재위)에 설치되어 조선시대까지 계속 사용되었다. 이봉수대는 조선시대 다섯 곳의 중심 봉수대로 가운데서

동래에서 서울로 연결되는 제2봉수대이다. 이곳에서 점화돤 봉수는 창선 대방산을 통해 사천 진주등을 거쳐 서울에

 전달되었다.

 

 

 보리암 주차장엔 자동차들이 보이구

 드디어 정상 ㅋㅋㅋㅋㅎㅎㅎㅎ

      자연의 조각품 금산 

 한려해상국립공원으로 지정된 삼남 제일의 명산으로 많은 전설을 담은 38경의 기암괴석이 금강산을 빼어 닮았다하여 소금강혹은 남해 금강으로 불린다 이곳 보겅산(금산의 옛지명)에서 태조 이성계가 100일동안 기도하여 왕위에 오르자 고마움의 표시로 비단 금자를 써서 이름을 금산으로바뀌 부르게 돠었다.

 

 

 드디어 한바퀴돌아 구경하고 보리암 뒤의 기념품 파는곳까지 왔군요.

 

 

 

 

         다른분 사진 찍는줄도 모르고 무침코 지나다가 다른사람의 카메라에 잡힌

        모습이 한쪽 구석에 있군요. 노친네 얼마나 욕을 얻어먹었을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