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금 연휴기간 서고진 즉 서고사를 찾게 되었는데 뜻밖에도 후백제의 견훤이야기를 듣고 ~~또한 오공시절의 법란이
최초로 일어난곳이 이곳에 있는 금산사라는 점을 알고는 구경하고 싶다는 분과 같이 서고사와 금산사를 구경하는
기쁨을 가지게 되었담니다.
금산사 구경 오시는분들은 금산사 밖에 있는 공동주차장에 주차하고 약 25분동안 산책길을 걸어 여기저기 구경하면서
경내로 들어가는 산책로가 있으며 등산을 하고 싶으신 분은 등산로를 따라 모악산 정상까지 등산할수도 있습니다.
만일 시간이 허락하지 않으신 분들은 경내에 있는 산중다원이 있는데 그곳에 전화해서 자동차번호를 알려 주심 사찰
관람료를 받는 곳에 연락이 되어 그냥 통과하게 되는데 ~~울나라 사찰 관람료 만만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차를 타고
있는 인원에 상관없이 무사통과 시켜주어 차 한잔들고 바로 경내로 들어가 구경하는 잼이도 있담니다,
단 찻값은 약간 비싸다는점은 감안해야 함니다
거대한 부처님이 있는 곳이람니다.
*황방산 서고사:
전주 황방산 자락에 위치한 아담한 절 서고사 후백제 견훤이 전주의 동서남북에 사찰중 하나라고 한다. 극락보전,
나한전과 새로 지은 전각하나 낮은 요채가 전부인아담한 절이다견훤이 후백제의 도읍을 전주에 정하면서 동서남북에
각각 동고진 서고진 남고진 북고진두었는데 각진에는 사찰을 지어 나라의 군사적 방비뿐 아니라 백성의 정신걱
교화까지 함께 아루르고자 했단다. 그래 서고진에 세운절이 서고사 다절이 자리한 황방산의 산마루에는 진의 흔적인
산성의 주춧돌이 일부 남아 있어 국가적 안위를 위해 치밀하게 계획된 사찰임을 짐작할수있다. 현재의 서고사는
천년전의 서고사와는 다른데 여러번의 화재와 6. 25동란을 등을 거치면서 옛절이 불타버리고 1989년에 다시 세워진 것이다
대한불교 조계종 제17교구 분사인 금산사의 말사로 908년 (후백제 견훤왕17)명덕이 창건하였고 1363년(고려공민왕12)
혜공이 중창하였으며 조선초기에 벽송 지엄(1464-4534)이 중건하였다. 그뒤 불이나서 소실 되었다가 조선초기에 다시
중창하였으나 화재와 동란으로 명맥만 유지 되다가 1989년에 지금에 이르렀의며 극락보전, 나한전 등이 있으며 새로지은
중층건물 뒤편에 석인상 하나가 비스듬히 누워 있어 찾아 볼만하다. 그러나 난 찾지 못했담니다.
*황방산
후백제를 세운 견휜이 완산주(지금의 전주)에 도읍을 정하고 동서남북에 각각 동고진,서고진, 남고진, 북고진을 두고
각진마다 사찰을 지어 외침을 막고자 하였다는데 황방산에는 서고사가 있다. 황방산은 누런 삽살개가 엎드려 서쪽으로
넘어가는 해를 바라보며 전주를 지키는 형상이라 하여 삽삽개 방(尨)자를 써서 황방산(황방산)이라 이름을 지었다고
한담니다.
사찰경내로 들어가게 되자 검둥이와 누렁이가 짖어 대는데 금방이라도 달려 들을것 같든데 안에서 스님이 절대로 물지
않으니 신경쓰지 말라고 하는데~~어디 선뜻 발이 내딛지 않드군요. 마침 친절하게도 여승님이 나오시드만 안내를
해주시어 고마웠는데~~이곳까지 힘들게 찾아 왔습니다. 왜 네비에 않나오죠? 물으니 무슨정권 시절에 느닷없이
네비에서 없어 지드라고 하드군요. 그러면서 전엔 네비가 사찰 안까지 안내했는데 없어졌다고 과잉 충성하시는 분이
있지 않는가 하는 의심이 든다고 하시면서 웃으시든데요. 네비 만드는 회사의 실수 아닐가?~~아니 이름있는 비싼
네비인데~~그러나 말씀 속엔 강한 불신이 숨어 있는 어투를 알수 있었담니다.
수령이 오래된 나무들을 봄 이사찰도 고풍을 느낄수 있었담니다. 이나무는 과거의 역사를 기억하고 있을가?
절안에서 내려다 보이는 새로이 조성되는 신시가지 모습이람니다. 몇 개되지 않는 공기업들이 이사와서 맹그는 신시가지
이제 조성되고 길이 나고 이미 서울에서 이사온 곳도 있지만 과연 서울을 떠나 이곳에까지 가족들이 이사와 살고 있을가?
모든 환경과 여건이 맞지 않으니 아직 이르겠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