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가공원(多佳公園)
완산공원에 대해 알다시피 완산은 옛날 전주의 이름이었지만 다가공원은 일본이 울나라를 지배했든 36년간 신사 참배라는
마음 아픔이 서려있는 곳이람니다. 전주시 완산동에 있는 공원임니다. 입구엔 전주팔경을 표현한 다가사후(多佳射侯)
다가천변 물이랑을 끼고 한 무리의 백설같이 날리는 이팝나무 꽃속에 과녁판을 겨누는 한량들의 풍경에서도 알수있듯이
유서깊은 활터 청양정(穿楊亭)이 있고 이곳은 옛날부터 수목이 울창하여 물에 비취는 바위의 절경이 유명했 으며
오월이 되면 하얀 꽃송이가 즉 이팝나무 군락은 전주 팔경의 하나로 꼽혔습니다. 오랜 전주의 역사를 상징이라도 하듯이
삼백년이 넘는 고목들과 26기의 불망비 (不忘碑) 와 선정비(善政碑)가 있으며 공원 정상부근에는 이고장 출산으로 시조시인
이자 국문학자인 가람(嘉藍) 이병기(李秉岐)(1891~1968) 선생의 시비가 있습니다.
뒤에 파란색갈이 있는곳으로 한 삼백미터쯤 오르면 공원의 넓은 터가 나옴니다.
남쪽을 바라보면서 저멀리 완산 내칠봉의 봉우리 들이 보이는 군요.
천양정
이정자는 조선시대에 한량들이 활쏘기 연습을 위해 활터에 세운것이다. 천양정은 숙종38년(1712)에 다가천 서쪽 냇가에
세웠으나 얼마후 홍수로 떠내려 가버렸다 그뒤 경종 2년(1722)에 다가산 밑에 다가정이란 정자르 짓고 활터로 사용했다
순조 30년(1830년)에는 이곳에 또다른 정자를 세우고 옛이름을 따서 천양정이라 했다 이후 북향인 다가정은 젊은 한량들
전용으로 아늑한 골짜기에 남향으로 자리 잡은 천양정은 주로 노인층이 사용하게 되었다 다가정, 천양정의 활쏘가 모임은
군자정의 모임과 함께 일제 식민지때 강압에 의해 하나로 통폐합되었다 천양이란 뜻은 버들잎을 화살로 꿰뚫는다는 것으로
신묘한 활솜씨로 이름높았던 조선태조 이성계의 고사에서 유래한 말이다.
약 140m나 되는 과녁에 명중될때는 무슨 방울 울리는 소리가 나는군요.
옛날에 전투할땐 이런 화살이 아니라는 군요.
슬픈역사가 담겨있는 계단이죠. 참궁로 꼭 읽어봐야 함니다.
이길로 내려옴 완산 내칠봉가는데 들어 서게 됨니다.
용머리 고개 육교에서 ~~ 옛날에 이곳에서 전투가 아주 심했다죠~~!
용머리 고개
용머리 형상을 하고 있다 하여 용머리고개라 이름 지어진 이곳은 용이 숭천하지 못한 한을 품고 몸부림 치다가 그대로
누워 버렸다는 전설이 있다. 용머리고개는 동학농민군이 전주성을 점령한 뒤 관군과 완산전투를 벌인 곳으로 남쪽의
기운들이 다가산 화산공원으로 이어져 오목대보다 더 큰 기가 뭉치는 명당으로 알려졌다. 그래서 일제가 우리민족의 정기를
말살하기 위해 의도적으로 끊어 놓았다는 설이 있다. 세월의 흐름을 빗겨서 있는 듯한 이곳 용머리 고개를 오르다 보면
대장간에서 들려오는 망치 소리와 골동품 상점에 쌓인 옛 물건들이 바쁘게 살아가는 우리들의 시간을 되감아 주는 듯하다.
거의 7~8십 미터에 걸처 이리 용이 그려져 있고 그 사이 사이에 일상 생활하는 서민들의 삶이 그려져 있읍니다.
장군봉의 팔각정 올라가는 길 너무나 많고 어디로 가야 하는건 자기 자신의 체력과 상의해야 함니다.
이곳으로가면 완산칠봉의 내칠봉의 용두봉 오르는 길임니다.
안내 표시가 이리 잘못되어 있읍니다.
다시 정리 해봄 온고을 완산이 어떻게 전주가 되었는지 아래 글을 참조하심 알수가 있읍니다.
전주의 역사
3세기(삼한시대)북방 20km지점에 마한이 도읍됨(지금의 금마)
6세기말(백제시대) 완산이라 부름
660년(의자왕20년) 라등연합군이 백제 왕도를 함락함
685년(신라 신문왕5년) 완산주를 둠
757년(신라경덕왕16) 완주를 전주라 개칭함
892년(신라진성왕 6년) 견훤이 도읍하여 후백제라 부름
1018년(고려 현종 9년) 강남 해양 양도를 합하여
전라도라 하고 전주는 안남대도호부라 부름
1403년(조선조태종3년) 전주부라 부름
1914년10월1일 전주면을 설치
1931년10월1일 전주면을 전주읍으로 승격
1935년 전주읍에서 전주부로 승격되어 완주군에서 분리
1949년 8월15일 전주시로 개칭
1989년 5월1일 완산구 덕진구 설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