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곡사 (태화산) 견문록
아주 옛날에 한번 구경한적이 있는 마곡사 그땐 잘몰랐는데 새로운 걸 알수있다는 말에 무심코 따라나선
산악회에서 많은 이야기를 들었담니다.
마곡사는 대한불교 조계종 제6교구 본사로 충청남도 70여개 사찰을 관리하고 있다 한다. 〈태화산마곡사사적입안>에
따르면 서기 640년(신라 선덕여왕 9년)에 중국 당나라에서 돌아온 자장율사가 통도사·월정사와 함께 창건한 절로
여러 차례 화재가 있었으나 고려 명종 시절인 1172년에 보조국사 지눌이 중수하고 범일이 재건했다고 기록되어 있다.
절의 이름에 대해서는 2가지 설이 있는데, 자장이 절을 완공한후 설법했을 때 사람들이 '삼과 같이 빽빽하게 모여들었다고
해서 마곡사라 했다는 설과 신라 무선(無禪)대사가 당나라 마곡보철(麻谷普澈)선사에게 배웠기 때문에 스승을 사모하는
마음에서 마곡사라 했다는 설이 있다 한다. 마곡사의 역사가 언제나 오늘처럼 평화롭고 은은했던 것은 아니었다.
창건 후 200년 쯤 되었을 때는 절을 제대로 돌보는 주체가 어떤 연유에서인지 사라져 버리고 도적떼가 주인행세를
하게 되었다. 이 도적떼를 몰아내고 다시 사찰의 모습으로 되돌린 시기가 바로 고려 명종 때라한다. 사찰 되찾기
작전은 결코 만만치 않았다. 그곳을 점거한 주체가 무장 도적들이었고, 오랜 세월 주인으로 지내왔는데, 순순히
내놓을 터가 없었을 것이다. 이 대목에서 ‘옛날 이야기’가 등장한다.
보조국사와 그 제자 수우가 왕명을 받아 마곡사 중창 작업을 시작했는데, 도적들의 저항이 너무 심했다. 그래서 나온 게
보조국사의 신통력. 국사는 ‘퇴거를 거부’하는 ‘무단 점거자’ 앞에서 일순 하늘로 날아오른다. 그때 공중에서는 “송~!방~!”
하는 소리가 들리는가 싶더니 갑자기 마곡사 마당과 주변 심지어 공중에까지 수십마리의 호랑이가 나타나 포효하며
도적들에게 공격을 가했다 한다. 겁에 질린 도적들은 즉시 사방으로 흩어지고 말았으며 마곡사는 고려 중기에 보조국사
지놀에 의해 중건되었다고 한다.즉 1172년(명종 2)에 왕명을 받은 보조국사가 그의 제자인 수우(守愚)와 함께 왕으로부터
받은 전답 200결(160만 평)에 중창했다. 당시 사찰의 규모는 지금의 2배가 넘는 대가람이었으나 임진왜란 때 대부분
소실되었다. 그뒤 1650년(효종 1) 주지인 각순(覺淳)의 노력으로 어느 정도 옛 모습을 찾았으나 1782년(정조 6) 다시
큰 화재로 영산전과 대웅전을 제외한 1051여 칸의 건물이 소실되었다. 대광보전은 1788년(정조 12)에 재건되었고,
영산전과 대웅보전은 1842년(헌종 8)에 개수되어 현재에 이르고 있다. 또한 항일독립운동가 김구선생이 일본 헌병
중위를 죽이고 잠시 피신해 있었던 곳으로도 유명하다.
먼저 태화산 등산부터 하고 절은 나중에 구경하기로 했읍니다.
활인봉-> 나팔봉->황토숲길->전통불교문화운->영은교->삭발바위->마곡사 경내구경
나팔봉지나 삭발바위를 노처 구경못하고 바로 전통불교 문화원 문이 잠겨있어 구경도 못하고 ~~은적교->영은교를 지나
원래 마곡사의 정문인 해탈문부터 구경해야 순서인데 난 세시간 동안 등산 하고 뒤로 부터 들어가게 되어
어느 절이나 절엔 대웅전있지만 이곳은 대웅보전과 대광보전 두개가 있다는데 젤위에 있는 대웅보전부터
구경하게 되었군요.
대웅보전에는 4개의 큰기둥이 싸리 나무라는데 이리 큰 싸리나무가 있을가? 또 지옥에 가게 되면 염라대왕이
대웅보전 싸리나무를 몇바퀴 돌고 왔냐구 물어본다는데 여러번 돌을수록 극락과 가까워진다는 설 때문에 이곳을 찾는
이들이 마니 돌아서 손때가 묻어 윤이 난다는데요.
대웅보전 옆에 이런글이 있읍니다. 속세의 사람들이 쓰는 출입금지란 말보다 훠~얼~씬 세련미가 있군요.
나같은 삼류 인생살이 하는놈이람 출입금지, 들어오지마. 이런말을 썼을 텐데요~~ 히히락락~~~
일명 다보탑또는 금탑이라고도 하며 탑의 형식은 원나라 영향을 받은 것으로 보이나
이탑의 특징은 나라의 기근을 3일간 말길수있다는 전설이 있다고 전해지고 있담니다.
이절의 중심법당으로 1788년에 중창되었다하며 잘모르지만 않은뱅이가 부처님께 의지하며 생활한지
100일만에 걸어나오면서 100일동안의 기도 끝에 깨달은것은 첫째도 참회 둘째도 참회 였다라고 함니다.
특징은 대웅보전과 대광보전, 탑이 일직선으로 되어 있다는것임니다.
백범당
1946년 여러동지들과 이곳을 찾아와 기념식수를 하고 향나무한그룰 심었다함니다.
“거래 관세관 유여몽몽사= 돌아와 세상을 보니 도든일이 꿈만같구나라는 원각경계에 나오는 문구를 보고
감개무량하여 이향나무를 심었담니다
아시다 시피 백범선생은 명성황후가 시해된 1986년에 일본군 중좌를 살해하고 살인범으로 낙인찍혀 인천교도소에서
복역중 탈옥하여 1898년 이곳에서 은신하다가 하은당이라는 스님을 은사로 출가하여 법명을 원종이라 하였다
사진에서 양복입고 넥타이 멘분들은 우익이고 한복 입고 완장두룬분들은 좌익이라고 한다네요.
극락교를 걸어들어가 극락에 가야 되는데~~ 나는 걸어 나왔으니 ~~키득키득~~~~
이런분이 혼내겠죠 키득키득~~그러나 석가모니는 인자하셔~~~
어느 사찰이나 마찬가지로 양편에는 동서남북의 불법을 수호하는 호법신장인 사천왕이 있으며
건립연대는 알수없으나 내부에 걸린 편액엔 1910년 6월에 중수하였다는 기록되어 있담니다.
먼저 이문을 거처 들어가야 되는데 난 까꿀러 나왔으니 ~~이크 ~~ㅋㅋㅋㅋ
열심히 듣고 계시는분들 잘들으시구 극락가심 나좀 오라하세요. ㅋㅋㅋㅋㅋ
시간상 놓친곳을 몇자적어보면
*영샨정마곡사의 현재 남아있는 건물중 가장 오래된 것으로 1650년 중수되었다 함니다. 이건물이 있는 곳이 이나라의
어진 정승과 용맹스런 장수를 만들어내는 태화산의 혈자리에 위치하고 있어 나라의 큰일을 할 인재 배출을
원하는 많은 불자들이 부처님께 기도 올리고 성취하고 있다고 함니다.
*명부전
살아있는 모든 것은 죽음을 맞이하게 되는건데 이곳은 죽음에 대해 한번더 생각해 보면서 그동안의 업보를
참회하고 소멸하는 기도하는 곳이람니다.
Epilogue
눈덮인 마당을 가로질러 극락교를 건너 오른쪽 계단을 오르면 이곳에는 국사당, 명부전, 매화당, 영산전, 홍성루,
수선사 등이 있다는데 명부전은 지장보살과 염라대왕을 비롯한 사왕을 모신 곳이라고 하며 스님들의 요사채인
매화당에는 기둥에 커다란 목탁 하나가 걸려 있어서 눈길을 끈다 함니다. 조금 더 둘러보고 싶지만 사진찍고
등산하다봄 언제나 꼴찌 눈총이 두려워 서둘려 마무리 함니다. 도와주신 분들이 있어 이리구경 할수있어 고맙고
감사하다는 말을 이곳에 남겨 놓습니다.
서천 어시장에서 점심먹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