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주남산, 포석정, 보문단지.
진해의 벚꽃 마음은 꿀떡같지만 인파에 시달리기 시러 가지못한것이 한편 마음한구석에 서운함이 남아있지만
아주 옛날 젊은시절에 진해에서 삼개월의 군사 교육 받을때 구경 한걸로 위안 삼을려 하지만~~ 그래도 눈앞에
아른 거리는 것을 지워 볼려 요즘 새로운 친구가 되어 주신 지방 경** 차장님을 만나 한번 구경 가시자고 하니
혼쾌히 함께 하시겠다고 ㅎㅎㅎㅎㅎ 경주에 도착하니 아니 이럴수가 이미 벚꽃은 끝무리를 하고 있질 않는가요.
그래 그럼 어디 등산이나 한번 하자고 한것이 부담없는산 남산 ~~~~~에~~~라!
아래사진은 정상에서 찍은 사진인데~~삼릉에서-> 상선암->금오산->용장사지->설잠교->용잠골 로 끝을 마무리 지우는
등산코스를 잡고 약 3시간짜리 등산을 하고 시간이 걸리드라도 한가지라도 배워가자 마음먹고서
삼릉 원명은 배리 삼릉이드군요. 이곳은 전국 GPS 산악회모임에서 처음으로 구경 하고 나서부터 사진모임에서몇번
글구 산악회에서 몇번 구경 온곳인데~~ 이번은 늙어 말년에 새로운 친구가 되어주신 분과 함께 벚꽃 구경이나 하자고
왔지만 좋질 않아 그럼 산이나 한번 구경하자고 한것이 삼릉이 있는 남산 ~~잘 몰랐는데 워낙히 유명한곳이고 이번엔
좀 자세히 들여다보니 신라 제8대 아달라왕 53대 선덕왕 54대 경명왕의 무덤이 한곳에 모여있어 삼릉이라 부르고 있드군요..
경주 남산일원엔 신라의 왕도였든 경주의 남쪽에 솟아 있는 금오산과 고위산 두 봉우리를 비롯하여 도당산. 양산등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이를 통틀어 남산이라고 부르고 있다. 산은 신라 건국절성이 깃든 나정, 신라왕실의 애환이 서린
포석정터 김시습이 거처하면서 우리나라 촤초의 한문소설 금오신화를 지었다고 하는 용장사터등 많은 산라시대 유적을
간직하고 있다.
삼릉계곡 선각육존불
이불상은 남산에서는 드물게 선각으로 된 여섯분의 불상이 두 개의 바위 면에 세겨저 있다안쪽 바위면 가운데 본존이
오른 어깨에만 법의를 걸치고 연꽃대좌에 앉아 있다. 머리 둘레에 두광만 새기고 몸둘레의 신광은 새기지 않았으며,
왼손은 무릎에 얹고 오른손을 들어 올린 모습이다 그좌우엔 연꽃대좌에 두광만 조각되고 방울 3개를 꿰어 만든 목걸이를 한
보살 두분이 서있다. 보통이 세분을 석가 삼존이라 부른다.
삼릉계석불좌상은 남산 중부능선쯤에 자리하고 있는 이 불상은 항마촉지인을 맺고 연화좌 위에 결가부좌한 석불좌상이다.
불상은 불두와 불산을 따로 제작하여 결함하였다 .이불상의 상호는 파손이 심했기 때문에 빰과 코 입등 대부분을 복원하였다
별로 높지 않은 산이지만 등산이란 언제나 이런거~~~태풍급의 바람이 불어 등산하시는 사람은 없군요
인증샷도 남기고
남산과 망산의 유래
옛날 경주의 이름은 서라벌 또는 새벌이라 했으며 새벌은 동이 터서 솟아오른 햇님이 가장 먼저 비쳐주는 광명에 찬
땅이라는 뜻으로 아침햇살님이 새벌을 비추고 따스한 햇살에 봄여름 가을 겨울 계절의 변화가 아름답고 온갖 곡식과
열매가 풍성하여 언제나 복된 웃음으로 가득찬 평화로운 땅이었다. 이 평화로운 땅에 남신과 여신 두신이 찾아 왔단다.
두신은 새벌을 둘러보고 아! 우리가 살 땅은 이곳 이구나 하고 외쳤고 이소리는 너무나 우렁차 새벌의 들판을 진동하였다.
이때 개울가에서 빨래하든 처녀가 놀라 소리 나는 곳을 보고는 깜짝 놀랐다. 산같이 큰 두 남녀가 자기쪽으로 걸어와
처녀는 겁에 질려 산 봐라 하고 소리 지르고는 정신을 잃었다. 산같이 큰사람 봐라 라고 해야할 말을 급한 나머지
산봐라 라고 외쳤든 것이다. 갑자기 발아래에서 들려오는 외마디 소리에 놀라 두신은 깜짝놀라 그 자리에 발을 머췄는데
다시는 발을 옮길수 없었 단다. 그래서 남산은 근육질의 남성을 상징하게 되었고 여신은 남산 서쪽에 솟아 있는 부드럽고
포근한 망산이 되었다고 전해져온다 (참고문헌 경주 시지)
용장사지 마애여래좌상
용장사는 조선 세조때 김시습의 우리나라 최초의한문 소설 금오신화를 지은 곳이다.이곳능선위에 옹장사터 3층석답이 있고
이마에불 바로 앞에는 삼륜대좌불이 있다.
탑(탑파)
탑의 기원은 인도어 스투파(Stupa)를 한자로 옮긴 답타의 줄임말이다. 처음에 답은 석가모니 열반후금몸에서 나온
8만4천개의 사리를 안치하기위해 만들어 졌다. 그리하여 석가모니의 진신사리를 모신 탑파는 초기불교의 신앙의 중심이
되었는데 그것이 탑의 기원이다. 초기의 탑은 마치 사발을 엎어놓은 듯 둥글게 만들었으며 후기로 갈소록 목조건축물의
형식을 취하게 되었다. 탑의 재료는 중국에서는 벽돌 탑을 만들었고 일본은 목탑을 주로 만들었다. 우리나라는 주로
돌을 깍아 세웠다. 우리땅에는 단단한 화강암이 맣기 때문에 오늘날까지 맣은 석탑의 흔적이 남아 있다. 돌로 만든
석탑의 형식은 한국만의 양식이다.
음식점인데 이리 아름다운 정원을 가지고 있군요
포석정
포석정은 신라왕실의 별궁으로 역대 임금들이 연회를 베풀던곳이다. 지금은 정자등의 건물이 모두 없어지고 마치
전복같이 생긴 석조 구조물만 남ㅇ있는데 화강석으로 만든 수로의 길이는 약 22m이다 임금은 이곳에서 신하들과
더불어 잔을 띄우며 시를 읊었을 것으로 보인다. 포석정에 대한기록은 신라 제 49대 헌강왕이 신하들과 어울려 여흥을
즐길때 남산의 신이 왕앞에서 춤을 추자 왕도 따라 추게됭 이로부터 어무산신무라는 신라춤이 만들어겼다고 전해둔다.
경애왕4년(927) 왕이 후백제 견훤 군대의 습격을 받아 최후를 마친곳으로 알려져 있다. 유상곡수연은 즁국이나
일본에서도 있어으나 오늘날까지 그자취가 이처럼 잘 남아있은것은 매우 드문일로 당시 사람들의 풍류와 기상을
엿볼수 있는 장소이다
포석정안의 소나무가 이쁘고 곱게 옷을 입었군요.
경주 박물관을 구경하게 되었는데 공사관계로 입장료는 없담니다. 반드시 읽어봐야 할것이 많이 있군요.
특히 이름이 뭐고 어떤내용이 쓰여 있고 명칭은 무엇인지~~~ㅎㅎㅎㅎ
영축산에서 설법하는 석가모니부처 석가탑.
토함산 불국사 대웅전 앞마당 서쪽에있는 석가탑을 그대로 만든것이며 석가탑의 정식명칭은 석가여래 상주설법탑인데
다보탑과 마찬가지로 법화경 견보답품의 이야기에서 영감을 얻어 만든 탑임니다. 영축산에서 설법하는 석가모니부처를
형상화 한것이 바로 불국사 석가탑과 과 다보탑 인것입니다.
석가모니부처앞에 나타난 칠보탑 다보탑
토암산 불국사대웅전 앞마당동쪽에 있는 다보탑을 그대로 만든것다보탑의 정식이름은 다보여래상주증명탑으로
법화경 견보탑풍의 이야기에서 영감을 얻어만든 탑임니다 다보탑은 영축사넹서 설법하는 석거모니부처의 설법을
증명하기위해 땅에서 솟아난 부처의 상징이요 탑을 묘사한것입니다.
박물관을 구경하고 다시 보문단지 보문정을 구경하게 되었지만 ~~~
이미 때가 늦어 반영이 나오는 곳인데 꽃잎이 이리도 마니 떨어져있군요.
인증샷을 남기고 ~~~화욜날이지만 그래도 구경오신분들은 많군요.
이틀후 목욜은 산악회에서 토암산 구경온다고 하니 또다시 오기로 하고
집으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