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닉스 2013. 4. 23. 17:00

선암사는 순천시 승주읍 죽학리 802번지로 조계산(해발 884m) 장군봉 아래에 위치한다. 사찰 창건에 대해서는 백제

아도화상이 창건 했다고 하는설, 신라말 도선국사가 창건설등이 있다. 현재 남아있는 유물로 볼때 통일신라시대로

보기도 한다. 고려시대에는 대각국사 의천이 대각암에 머물면서 선암사를 중창하여 그규모가 법당13동 전각12동 방26개

산내암자가 19게에 이르렀다 한다. 정유재란때 왜군의 침략으로 전각이 불에 타는 등 막대한 피해를 입게 되었다. 정유재란

이후1660년에 경잠, 경준, 문정대사가 8년동안에 걸쳐 중창부사를 하여 사찰의 면모를 새롭게 하였다. 숙종7년(1681)

호암약휴가 제4차 중창부사를 주도하여 원통전 관음상, 53불전 대법당 오십전 승선교등 있다른 불사가 이루어 졌다.

순조 23년(1823) 화재가 발생하여 대웅전 명부전등이 소실되어 다음해에 해붕과 줄암, 익종 세대사가 제6차 중청뷸사룰 하고

일시 고쳐졌던 산이름을 청량산에서 조계산으로 사찰 이름을 해천사에서 선암사로 다시 회복하여 명실상부한 옛 면모를

되찾게 되었다. 해암 이후 1948년의 여순사건과 한국전쟁으로 많은 피해를 입었으며 비구 대처승간의 대립으로 일부 건물이

유실되기도 하엿으나 최근 대부분의 전각이 수리되었다.  

조선시대에 만들어진 승선교는 화강암으로 만든 아름다운 아치형 석교이다. 계곡의 폭이 넓어 아치 또한 유달리 큰편이다.

아랫 부분에서 부터 곡선을 그려 전체의 모양이 완전한 반원형을 이루고 있는데 물에  비쳐진 모습과 어우러져 완벽한

하나의 구성을 이룬다. 숭선교는 그 밑단 부분이 자연 암반으로 되어있어 급류에도 휩쓸릴 염려가 없다. 가운데 부분에는

용머리가 조각되어 있다. 전체적으로 정교하고 웅장하며, 잔영미를 풍기고 있다. 이다리는 숙종(1713)에 호암대사가

6년에 걸쳐 완공했다고 전한다. 일설에 는 선암사를 고쳐지을때 원통전(1698)과 함께 설치 했다고도 한다. 

 

 

 

 

 선암사 삼인당은 알모양의 연못안에 섬이 있는 독특한 양식으로 선암사 사적에 따르면 신라 경문왕2년(852)에 도선국사가

축조한 것이라 전한다. 삼인이란 제형무상,제법무아, 설반적정의 삼법인을 말하는 것으로서 모든 것은 변하여 머무른것이

없고 나라고 할만한 것도 없으므로 이를 알면 열반에 들어 간다라는 불교 사상을 나타낸 것이다. 우리나라에서 이런 독특한

이름과 모양을 가진 연못은 선암사에서만 볼수있다.

 선암사 일주문

이일주문은 누문인 강선루를 지나 처음 들어서게 되는 문으로 1719년에 세워진 것이다.  조계문 창건 상량문에 의하면 원래의

건물은 화재로 인해 없어지고 1540년에 다시 세웠으나 병자호란으로 피해를 당하였다가 1719년에 또다시 세운것이라고 한다.

단층 맞배기와집(옆에서보면 人자모양)으로 원향의 주축돌위에 배흘림 기둥(기둥의 중간이 긁고 위아래로 가면서 가늘게 된

기둥)을 세웠으며 기둥과 기둥 사이에 3군의 공포를 배치해 놓은 다포식 건물이다.

 

 

 

 

 

 

 

 

 

 

 

일주문 아래에서 매표소 까지의 야생화

 

 

 

   

 

 

 순천만과 와운해변  

 

마지막으로 순천만에 도착해서 보니 이미 해는각도가 많이 돌아가 지금이 시기가 아니라는 말이 실감나는군요.

주말이라도 여객선은 다니지도 않고 촬영여건이 아주 좋질 않았읍니다. 와운해변의 작업하시는 분들도 업고 그저

그런 방분기가 되어 버렸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