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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양 사인암

피닉스 2013. 11. 3. 14:14

 하늘높이 치솟은 기암절벽이 마치 다른 색깔의 비단으로 무늬를 짠 듯 독특한 색깔과 모양을 가지고 있다.

이곳은 해금강을 떠오르게 하는 풍경으로도 유명한데, 추사 김정희가 하늘에서 내려온 한폭의 그림같다고

예찬했을 정도로 뛰어난 경치를 자랑하고 있다. 사인암이라는 이름은 고려 후기의 유학자인 역동 우탁(1263~1342)이

지냈던 사인이라는 벼슬에서 유래 하였다. 단양이 고향인 그는 이곳을 유난히 사랑하여 자주 찾았다고 하는데.

조선 성종때 단양 군수를 지냈던 임재광이 그를 기리기 위해 이바위를 사인암이라 지은것이다.

사인암이라는 유래가이와같이 쓰여져 있군요

 

 

 

 

 

 

 

 

 

 

 

 

 

 

 

 

 

사인암이 있는 정련암의 연혁이 아래와 같이 쓰여 있군요

 

청련암의 역사를 살펴보면 고려 공민왕(계축년22년)에 승려인 나옹선사에 의해 창건 되었으며(1373녀)

장구한 역사를 지닌 고찰이다. 본시 대강면 황정리 28번지에 위치했으며 대사찰이며 대흥사의 말사로 주재했었다,

구한말인 1876년 일본군의 침략이 있었던바 문경에서 봉기한 의병장 황토고리군과 접전 끝에 본사인 대흥사은

불에 타 소실되었고 1954년 적색분자 소탕작전 관계로 황정리 일대에 소개령이 내려졌으므로 그곳 주민과 함께

청련암 또한 현위치인 사인암리 산27번지에 이주하면서 기존의 대들보와 기둥을 함께 옮겨와 이전 함으로서

현재에 이르고 있다. 대웅전의 주불은 고려 말에 조성된 대세지 보살상을 모셨고 좌보처로 지장보살상과 우보처로

관세음보살상을 모시고 있다.                 대한 볼교조게종 청련암주지 합장

 

 

 

                                                                                                  

 

 

 

                                 이시조는 역동 우탁선생께서 지으셨고 제목은 탄로가 입니다.

                          선생께서는 단양군 적성면 현곡리에서 출생하셨고 성리학과 역학 연구에 몰두 통달하셨으며

                          감찰규정으로 근무하실 때 왕의 비행을 고치고자 도끼를 앞에 놓은 이른바 지부상소를 하신

                          충신임니다. 관직은 성균관 좨주(정3품)에 이르렀고 문하 퇴계 이황은 선생의 충의 대절은 이미

                          천지를 움직였고 산악도 움질일만 하고 진리를 논함에 있어서는 정당했다 하였으며

                         후학의 사범이 되어 백세묘향을 받을분 이다라고 했습니다.

                           우리나라 시조역사를 말할 때 선생을  시조의 중시조 라고 추앙하고 있습니다.

 

        개울가  바위에 이런것도 그려져 있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