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테고리 없음

완산공원

피닉스 2015. 4. 28. 18:16

 사월 초순 울고장 전주에 공원이 몇군데 있지만 그래도 역사가 있는 공원인 다가공원과 완산공원의 뿌리를 찾으며

어찌하여 전주라는 지명이 생기게 되었는가에 대해서도 알수 있었고 과거의 험난한 시절에 역사의 피비린내 나는 싸움이

 있었던곳에 내가 서있구나 하는 여러가지 착잡한 생각에 잠겨 다가 공원에서부터 완산공원까지 완산칠봉의 내칠봉을

찾아볼 시간이 있어 새로운 분들이 나를 찾아 전주에 오시게 됨 구경 시켜드릴 장소가 또 하나 늘어나게 되었군

전주엔 공원이 여러곳 있는데 덕진공원 화산공원 완산공원과 다가 공원~~몇군데 있으며 다가공원과 완산공원은 나름

유명하며 연관이 서로 있는 공원임니다. 먼저 전주라는 이름은 원래 완산이었고 나도 완산7봉을 찾으면서 몇가지의 중요한

사실을 알게 되었담니다.

 

전주의 옛 이름이라 생각되는 온고을 이란 단어는 먼저 마한시대 호남지방의 규모가 큰 읍이었든 원상선을 생각하는데

그당시.온은 일백을 뜻하는 순 우리말이며 또한 완벽하다는 뜻이란다. 원 역시 온의 음차 였으며 후에 백제는 원산성

완산이라고 불렀다. 완산이란 지명은 현재 전주시 하위 행정구역인 완산구와 옛 전주군에서 시가지를 제외하고 군으로

분리된 완주군의 이름으로 명맥을 잇고 있다. 통일신라 756년 (경덕왕15)에 경덕왕이 전국의 지명을 한자로 바꾸는 작업을

통해 완을 의역해 현재의 이름인 전주라고 고치게 된다 이후 신라가 서서히 국가의 쇠퇴기에 들어서 900년(효공왕4년)에

신라의 장수였던 견훤이 후백제를 세우면서 40여년간 전주를 수도로 삼았다. 이때 옛 신라의 완산주 관청이었던 현재의

시내 지역을 벗어나 새로 전주성을 쌓았는데 이 전주성은 동고산(승암산 치명자산)을 왕궁으로 삼아 북서쪽으로 뻗어 나간

형상을 하고 있었으며 그 규모는 현재의 오목대 길 건너편으로 해서 전동 부근까지인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아침운동을 하고 있읍니다

 

 

 

 

 

 

동학농민군 전주입성기념비 임니다.

 

 

완산공원을 내려오면서~~~

 

 

장군봉 올라가는 계단

동학혁명기념비 있는곳으로 가는길

멀리 조그마하게 장군봉 팔각정이 보이는군요. 초록바위 가는길에

 

 

 

투구봉에 있는 초록바위는 개인 땅이라 못들어가게 철조망이 처져 있읍니다.

완산 시립 도서관에서 투구봉을 바로 올라갈수 있읍니다.

 

 

 

 

 

 

초록바위

조선시대 처형장으로 동학농민군지도자 김개남 천주교 신자들이 처형된곳이다. 땀띠샘 완산칠봉에 있는 약수터에

물이 맑고 차가워서 땀띠에 걸린 사람도 이물로 씻으면 땀띠가 없어진다고 해서 땀띠샘이라고도 불렀다. 60년데

초반까지도 완산초등학교에 강당이 없어서 땀띠샘계곡에서 졸업식을 가졌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