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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영 연화도 (A)

피닉스 2015. 10. 26. 11:44

 통영 연화도의 출렁다리가 있는 용머리 해안이 구경거리가 좋다는 이야기를 들었는데~~이제야 인연이 되어 1022

구경 가기로 하고 6시에 전주를 출발해서 840분에 통영 여객선 터미널에 도착해서 연화도 ->욕지도를 오가는 920

연안여갯선으론 좀 커다란 배를 타고 1시간만에 연화도 연화 선착장에 도착해서 처음부터 좀 빡세게

161->154->연화봉(215)-> 사명대사 토굴->보덕암->5층석탑->144->용머리푯말->

만물상푯말->아들바위->118->70->용머리바위에서 임도로 나와 연화 선착장 도착해서 330분 배로

통영으로 나와 언제나 이곳에 옴 맛갈 나는 횟감 먹고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우리를 태우고 갈 연화도와 욕지도를 오가는 배람니다. 하늘은 미세먼지라 이리생기고 해무가 아니람니다.

통영 내항을 벗어나면서 보니 이리 생겼읍니다.

여행객은 별로 없고  또다른 방엔 누워서 편히 갈수 있는 객실도 있읍니다. 또한 3층엔 음료수를 파는 멋진 카폐도 있읍니다.

넘 넘 천천히 항해 함니다. 느림보 배이군요.

 

드디어 연화도에 도착했읍니다.

 

연화도란?

연화도사가 내가 죽으면 바다에 수장 시켜달라는 유언에 제자들과 섬주민들이 도사의 유언에 따라 시신을 수장하니 도사의

 몸이 한송이 연으로 승화 되었다 하여 연화도라 하였단다. 그후에 사명대사가 연화도에 들어와 연화도인 토굴터밑에다

움막을짓고 정진하다가 크게깨달은바가 있어서 대도를 이루었다고 한다. 지금 그토굴터와 사명대사가 먹었든 감로수가

그대로 보존되어 있다고 한다.

이곳 연화도를 불연(佛緣)의섬 이라고도 하는바 이는 연화도인이 이곳 연화봉에 실리암을 짓고 수도하였다고 하며

사명대사가 이곳에서 수도한 흔적과 전설이 곳곳에 베어있는 까닭이다 조선 중기 사명대사는 조정의 억불정책으로 남해

금산 보리암에서 수도하고 있었다. 그의 처보월, 여동생 보운 연인 보련이 그를 찾아 전국을 헤매던중 보리암에서 극적으로

 만나 이곳 연화도로 피신하여 연화봉 아래 토굴에서 수도 정진하연다 하며 네 사람은 이곳에서 이렇게 만난 것은 세속의 인연

불인의 인연, 삼세의 인연이니 즐표로 삼는 시를 각각 1수씩 남겼기에 이에 밝혀 둔다. 이세 비구니를 자운선사라 하며 후일

이들은 토굴을 떠나면서 부,,재라는 글을 판석에 새겼으며 지금도 마을에서 실물을 보존관리하고 있다

이곳은 어판장이라는데요~~~

출렁다리까지 일인당 3000원 이지만 숫자가 적음 오천원이라는군요, 왕복 얼마인거요?

 

우측에 연화여객선 터미널도 보이는군요.

들머리로 가면서 내항을 처다보니 저리 생겼읍니다.

 

사진은 이리 생겼지만 좀 빡세게 오름담니다.

얼마가지 않음 이리 연화봉이 나오고 ~~~

 

 

 

연화봉 주위엔 이리 생겼읍니다.

 

 

 

 

저기보이는 거가 용머리 해안선임니다. 글 그끝까지 가야 함니다.

 

잘은 모르지만 어찌 용머리같이 생겼다고 하는지 나의 눈엔 억어같이 생겼는데요.~~~

 

 

 

연화도의 불교의 역사는 500여년 전 연산군 (1496-1500)의 억불정책으로 연화도로 피신하여 은신한 연화도사가

제자들과 연화봉 밑에 토굴을 짓고서 전래석(둥근돌)을 부처님 대신으로 모셔놓고서 예불을 드리며 수행을 하셨다는

것으로 시작된다.

 

 

 

보덕암을 구경하게 되었읍니다.

 

 

 

보덕암에서 보는 용머리 해안은 좀더 가까이 보임니다.

 

무슨사연이 있으시기에 저리 지극정성으로 불공을 드리시는가요? 많은 사연이 있으시겠지만 그래도 자식의 성공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