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대산 상원사
상원사는 신라 33대 성덕왕 4년 (705념)에 보촌 효명 두왕자가 세운 절로 처음에는 진여원으로 불리웠습니다. 본래 오대산은
신라의 고승 자장이 중국 당나라의 오대산 문수신앙을 수용한 이후로 문수도량우로 유명한 곳이 었습니다. 조선시대에는
태조와 세조가 원찰로 삼으면서 상원사에는 여러 전설과 소중한 문화재가 많이 전해 내려오고 있습니다.
조선 세조 12년(1466)에 둘째 딸 의숙공주 부부가 세조와 왕실의 안녕을 기원하고자 만들었다고 합니다. 세조가 왕위에
오른 뒤 몸의 종기를 부처님의 힘으로 고치려 상원사로 가던 도중에 만난 동자로 나타난 문수보살의 모습을 형상화해
만들었다는 이야기가 전해 옵니다. 이동장상에서는 2개의 발원문과 23절의 복장유물(보물793)이 발견 되었습니다.
관대(冠帶)걸이 이곳은 조선 초 세조대왕이 목욕할 때 의관(衣冠)을 걸어둔곳이라 하여 관대걸이라 하며 주변나무는
소나무가 낙옆 침엽교목 일명 잎갈나무라고 부르며 백두산 중턱에 주로 서식하고 있는 수목(樹木)으로서 수령 (樹齡)을
약 100년으로 보고 있다. 여기서부터 약 2km 서쪽 서대장령(西臺長齡) 밑에는 우통수(于筒水)라는 샘이 있어 물의 비층과
맛이 특이하여 중국 양자강의 중냉(中冷)과 같다고 하여 한강의시원(始原)이라 전한다.
상원사 동종은 신라 성덕왕 24년(725)에 주도된 것으로 우리나라에 전해지는 동종 가운데 가장 오래 되었습니다.
안동의 관풍루에 걸려 있던 것을 예종 원년(1469년)에 상원사로 옮겼다고 합니다. 종의 표면에는 구름위로 하늘을 날면서
옷깃을 흩날리며 악기를 연주하는 비천상이 아름답게 양각되어 있습니다.